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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의 말

 

밥상의 말
파리에서, 밥을 짓다 글을 지었다

2020. 3.16

목수정/책밥상

 

 

고향에는 풍경이 있고 계절이 있고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은 가족이고, 이 가족을 결속하는 구심점은 밥상일 것이다. 가족은 이 밥상에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공동체다. 밥상을 떠나서 하룻 길을 걷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동안 우리는 밥상과의 거리를 한 발짝씩 벌려왔다. 원심력을 늘려 가는 것, 이것은 성장이었다. 마침내 원심력이 구심력을 이겨내고 밥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는 것은 성취다. 그날에도 어머니는 밥상을 차린다. 어머니는 우리가 잊어버린 좌표를 보존한다.

"밥은 먹었냐?" 모처럼 찾아뵈면, 어머니가 처음 건내는 말이다. "아이구, 지금이 몇 신데 밥이에요. 벌써 먹었지." 하지만 소용 없다. 어머니는 벌써 밥상을 차리고 있다. 작가는 이것을 지치지 않는 기도라고 했다. 그래, 이것은 기도였다. 다른 밥상을 돌고 있을 자식의 빈자리에 첩첩이 쌓아두었던 기도.


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자 밥상으로 돌아오는 주기가 불규칙해졌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양의 쌀을 덜어서 밥을 짓는다. 밥 한 공기가 남는다. 아이의 빈 자리를 발견하는 것, 남은 찬밥을 먹는 것,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었다. "밥은 먹었냐?" 나도 아이를 볼 때마다 똑 같이 묻는다. 작가는 또 이것을 '너의 건강한 생존, 그 한 가지만을 관여하겠다는 선언'이라고 했다. 우리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더 자라고 나니, 이 질문이 가지는 다른 용도를 발견한다. 불쑥 커 버린 아이에게 이제는 친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지낼만 한지, 더는 물을 수가 없게 된다. 깊고 속을 알 수 없는 우물과도 같다. 이 우물에 던져보는 가장 함축적이고도 무해한 질문이다. "밥은 먹었냐?" 반복해서 던지고 반향을 듣는다. 우물이 얼마나 깊은지,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물이 충분히 차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안 그런 척 하면서, 이제 너는 독립개체니까.


『밥상의 말』은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에서 부터 시작한다. 작가는 어머니의 밥상을 떠나 프랑스에 유학을 갔고 거기서 가정을 이루어 남편과 아이를 위해 밥상을 차린다. 이방의 땅 프랑스에서 머나먼 고향, 어머니의 밥상을 돌아본다. 그리고 프랑스의 밥상을 본다. 이번엔 이방의 문화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시선이다. 두 개의 다른 밥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밥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요지에 있는 셈이다. 머나먼 두 밥상의 거리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있다. 가족 이야기로부터 여남의 문제, 바른 먹거리, 환경과 공동 부엌에 대한 제언 등, 밥상이 의외로 다양하고 큰 담론으로 연결 된다. 단단한 주장임에도 밥상에서 시작하는 말들이라서 그런지 순한 귀로 듣게 된다. 큰 거래와 외교적 대 타협이 밥상-만찬장-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세게 비약하다 보니 뜬금 없는 곳에 닿기도 한다. 동물 복지와 유기농 식재에 관한 주장에 대해서는 깊이 이해하고 동의하나, 역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한 번 더 절감할 뿐이었다. 코로나 판데믹 시대에 안티 백신의 투사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작가를 보며, 그가 짓는 밥상과 현실 세계의 밥상 사이에 이미 적지 않은 간격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이상주의자는 존경 받을만 하다. 인류가 달에 발자욱을 남기게 된 위업은 밤 마다 달을 바라보던 이상주의자의 상상으로 부터 시작했다. 적어도 80일이 필요할 것이라 상상했던 세계 일주를 하룻만에 가능하게 한 비행기는 새처럼 날 수 있을 것이라는 라이트 형제의 이상에서 출발했다. 비행에 성공하기 까지 805번의 실패를 거듭했다는데, 이 과정에서 받아야 했던 주변의 핀잔과 조롱은 기술적인 문제 못지 않게 고되고 외로웠을 것이다. 

 

이상이 실현되지 않는 데에 따른 실망감과 인정 받지 못하는 소외감에도 꿈 꾸기를 멈추지 않는 그들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까. 다만, 우주인들이 땅에 발을 딛고 로켓을 짓고 라이트 형제가 땅에 발을 딛고 비행기를 지었 듯이, 땅에 발을 딛고 이상을 지향한다면 그들도 이 세계도 길을 잃지 않고 함께 선한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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