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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다

[책] 시인 - 마이클 코넬리

러기- 2022. 5. 13. 23:49
마이클 코넬리 <시인>

 

시인

마이클 코넬리
소설, 1996
The Poet by Michael Connelly

음울한 웅덩이에서 노는 하루, 역시 추스미 (추리스릴러미스테리물)

지하철에서 길을 걸으면서 운동하면서 책상에 앉아서 꼬박 읽었다. 영화에 액션물이 있다면, 책에는 추리 스릴러물이 있다. 화려하고 박진감 있는 액션물을 문자로 읽고 상상해내는 것은 충분치가 않다. 잘 만들어서 넉넉히 먹여주는 영상에 이미 길들어 있어서 더 그렇다. 액션물은 역시 영화로 봐야 제맛이다. 반대로 복잡한 사건을 추리하면서 긴장감과 공포를 일으키는 추리 스릴러물은 영상으로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복선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주면 김이 새고, 안 보여주면 억지스럽다. 등장인물이 혼잣말하듯 끊임없이 설명해대는 영화는 쉽게 지루해지고 끝내는 난해해진다. 나의 리듬으로 책을 읽는 편이 더 생생하다.

시원하게 한탕 터뜨리고 정의롭게 마무리 짓는 액션영화에 반해, 추리 스릴러물은 낚싯바늘에 꿴 물고기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뜰채에까지 담겼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기분이다. 제발 꿰 달라고 코를 내민 것은 나였고 마침내 도망 나왔는데도, 결국엔 무섭고 찜찜하다. 대부분의 추리 스릴러물이 살인, 성폭력, 아동학대와 같은 잔혹한 사건에서 출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는 새로운 사건을 요구한다. 이전에 보지 못한 형태의 살인, 이전보다 끔찍하고 잔혹한 사건이 먼저 필요하다. 여기서 충전한 범인에 대한 호기심과 적개심의 양이 곧 길고 복잡하게 이어질 여정을 따라가는 에너지원이 된다. 그래서 그런지 추리 스릴러물을 읽는 일은 사실 음울한 일이고, 복잡한 퍼즐을 다 맞춘 다음에도 찜찜한 기분이 남는다.

코넬리의 '시인'은 대 서사시이다. 모든 서사가 함정이고 모든 문장이 숨은 그림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기획 기사를 주로 쓰는 기자 잭 매커보이가 경찰이었던 쌍둥이 형의 자살 사건을 마주하다가 의문점을 가지는 데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여기에 나오는 중요한 단서가 에드거 앨런 포의 시구다. 추리소설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포의 소설과 그의 시가 그렇듯, '시인'도 음울한 공기로 가득하다. 어지럽게 매설한 퍼즐이 어긋나지 않고 맞아떨어지는 쾌감 못지않게, 여러 끔찍한 살인사건이 이 퍼즐 여행의 동력이라는 점에서 이 여행은 음울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잘 지어진 한 편의 추스미를 읽는 것은 화려한 액션영화를 보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다. 진흙탕 웅덩이에 풍덩 빠져서 한바탕 놀고 나오는 기분. 밥을 먹으면서도 읽기를 멈출 수 없을 만큼 재미있다. 미국 언론과 기자들의 치열한 취재현장, 그리고 FBI의 세세한 속성을 엿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이다. 단서를 흘리지 말아야 하는 추스미의 특성을 고려하여 감상문은 요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