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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다

[책] 아무튼, 술

러기- 2022. 2. 27. 11:23

아무튼 술-김혼비

아무튼, 술

에세이, 2019. 5. 7

김혼비/제철소

 

"난 술 별로 안 좋아해요"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살짝 긴장이 된다.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것 같다. 파블로프의 종소리와 비슷한 원리다. 이 말을 즐겨 하는 사람에 대한 추억 때문일 것이다. 직장 다닐 때 부서장이 그랬다.
 
"나도 술 별로 안 좋아해!"
부서장을 맡고 첫 회식 첫머리에서 그가 이렇게 외쳤다. 두툼한 손으로 소주병을 집어 들고 그는 다시 외쳤다. "나도 술 별로 안 좋아해!" 와드득, 목을 비틀어 따낸 병뚜껑을 상 위에 떨어뜨리고 그 손으로 자신의 잔을 높이 들어 모두가 보라는 듯이 입에 털어 넣었다. 빈 잔을 오른쪽에 앉아 있는 김 차장에게 따라주고 돌리게 했다. 가장 멀리 앉아 있는 문 대리를 불러서 "치사하게 혼자만 먹지 말고 한 잔 달라" 했다. 잔을 비워서 왼쪽에 앉은 윤 과장에게 따르고 돌리게 했다. 이번엔 이미 잔을 오른쪽으로 넘긴 김 차장에게 한 잔 달래서 마시고 빈 잔을 다시 왼쪽으로 돌렸다. 오른쪽 한 칸 건너 앉은 최 사원에게는 사수인 송 대리에게 한 잔 돌리라 하고, 서 대리에게는 잔을 잘생긴 박 사원에게 주라 했다. 돌고 돌리고...
열 명이 앉아 있는데 잔은 세 개가 모자라거나 네 개가 남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의 앞에는 잔이 두 개, 세 개까지 있고, 누군가에게는 잔이 없다. 그는 일사불란하게 정체된 잔을 재촉하여 잔이 없는 곳으로 흐르게 했고 술이 떨어질세라 연신 고음부를 소화하는 바리톤의 목소리로 "언니"를 외쳐서 친히 소주를 건네받았다. 와드득, 병목을 비틀 때는 이렇게 외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도 술 별로 안 좋아해!" 스무 번쯤 같은 문장이 반복 선포되자 첫 회식이 끝났다. 그날 이후로 이 문장이 싫어졌다. "나도 술 별로 안 좋아해"
술을 별로 안 좋아하는 그는 회식을 좋아했다. 영업부여서 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일주일에 다섯 번은 기본이었고, 기세가 좋으면 일곱 번도 모였다. 고기를 굽든 회를 썰든 전골을 끓이든 그는 늘 우람한 목소리로 "언니"를 외쳐서 소주를 건네받았고, 와드득, 병목을 비틀 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나도 술 별로 안 좋아해" 2년 정도 싫어하는 문장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이런 문장을 말하는 사람을 경계하게 되었다. "나도 술 별로 안 좋아해"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술을 별로 안 좋아했으니까.'
<아무튼, 술>이라는 제목만 보고도 약간 긴장감이 돌았다. 어느 대목에서든 작가가 와드득, 병목을 비틀면서 불쑥 내게 한 잔을 건넬 것 같았다. "나도 술 별로 안 좋아하지만..." 빼곡한 활자의 숲 어딘가에서  볼드체로 새겨놓은 이 문장에 걸리면 넘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술 권하는 사회라든가, 어쩔 수 없이 마시는 술이지만 오직 술만이 인간관계를 술술 풀 수 있다는, 세간의 술꾼들이 취기에 설파하는 술 철학이면 매우 난처할 것이다. 
다행인지, 작가는 술 앞에서 겸양을 떨지 않는다. 그는 감추지도 사양하지도 않는다. 참지도 않는다. 페이지마다 술이 찰랑찰랑한다. 기술적으로 잘 기울이면 몇 잔은 따라낼 수도 있을 것도 같다. 굳이 잔을 권하지도 않는다. 가본 적 없는 어느 나라의 들어 본 적 없는 희귀한 술을 마셨다는 자랑도 아니다. 그냥 술 이야기만 술술이다.
세상 모든 술꾼은 술을 좋아하면서도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어떤 이유가 있다. 작가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그도 여느 술꾼처럼 술 마실 구실을 구한다. 술을 마시면 안 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마셔야만 하는 이유.
『역시 '오늘의 술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건 그나마도 '어제 마신 술' 밖에 없다. 앞으로도 퇴근길마다 뻗쳐오는 유혹을 이겨내고 술을 안 마시기 위해서라도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다.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일을 위해 오늘도 마신다』
오, 이 얼마나 솔직하고도 구차한데 타당하며 항구적인 이유인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늘 구실을 찾는다. 영업부니까 거래처를 만나는 것만큼 좋은 구실은 없다. 이는 연장된 업무, 즉 신성한 노동이다. 거래처가 없으면 조직의 단합을 위해 술을 마신다. '워라벨'과 같은 삶의 질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까지 갈아 넣는 존엄성을 지닌 회식이다. 이 두 가지 구실의 특징은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데 억지로 마신다는 점이다. 누구는 좋아서 마시는 줄 알아? 라고, 늘 말하지 않든가. 팀장님 때문에 한 잔, 직원들 때문에 한 잔, 기분 좋아서 한 잔, 기분 나빠서 한 잔, 기분이 그냥 그래서 한 잔...
하지만 술을 마셔서는 안 되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건강상의 이유나 경제적인 사정이 있을 수 있고, 가정의 행복, 시간 관리 혹은 건전한 사회 건설도 좋은 이유가 될 수 있다.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우선은 이 모든 이유를 압도하는 타당성을 지닌 구실을 만들어야 한다. 매일 술을 마시려면 매일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고된 창작을 불사해야 한다. 그리고 비록 허점이 더 많은 서사지만 적절한 수준에서 설득이 되어 줘야 한다. 옆에서 지켜보자면 애써 만들어낸 구실도, 그것에 넘어가 주는 이유도 모두 구차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오늘 술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내일 술자리를 피하기 위해서는 오늘 마셔야 한다는 구실은 차라리 타당하고 항구적이다. 어차피 구차하기는 마찬가지니까.
이 책에는 찰랑찰랑한 술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주도 있다. 술 있는 곳에 안주가 따르고, 좋은 안주는 술을 부른다. 술을 팔기 위해 좋은 안주를 내기도 하고, 안주를 팔기 위해 술을 팔기도 한다. 술술 흐르는 술을 따라가다가, 정작 안주에 배가 불렀다. 다 읽고 나니 작가 주모가 술 핑계로 은근히 안주를 팔아먹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단언컨대 이 집은 안주 맛집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쯤에서 자리를 뜨기로 한다. 아무래도 안주 이야기는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끝.
 
2차 - 그냥 마치기 아쉬워서 '간단하게 딱 몇 줄만...'
2차는 늘 간사한 높이의 문턱을 제시한다. "아쉬운데 입가심으로 간단하게 딱 한 잔만 더... 갈 사람은 가고" 아쉽지도 않고 간단한 적이 없다는 명확한 데이터가 있음에도, 대부분은 이 간사한 높이에 속아 넘는다. 그것은 2차가 발생하는 순간 비로소 차수가 부여되는 1차에서 마신 술 덕분일 것이다. 즉, 2차는 술의 제안이고 술의 결정이다. 길어지는 이야기가 불편하거든, 갈 사람은 가시고~
정말 술을 싫어하는 내게도 술자리를 즐기던 구간이 있었다. 나 마시는 만큼 당신도 마셔야 한다는 강요를 주고받으며 기세를 다투던 술자리, 금요일 밤에 반지하 술집 계단을 내려갔다가 길 쪽으로 난 창문으로 쏟아지는 토요일 아침 햇살을 향해 마지막 건배를 하고 흩어지던 술자리, 연속 15일째 술이라는 화재가 유일한 대화거리였던 술자리도 있었다. 화장실 바닥, 북한산 자락 주차장 축대 틈, 을지로 도로변 등에서 숙면하고 새벽을 맞는 일은 누구나 해 보는 거니까. 그러다가 근무하는 부서가 바뀌자 자연스레 술이 줄고 또 끊기도 했다. 그러다 또 서식지가 바뀌어서  금요일 점심시간에 '딱 한 잔만'으로 시작하여 토요일 새벽까지 이어지던 술자리도 있었다. 다시 생태환경이 허락하면 한 반년쯤은 한 잔도 안 마시고 살 수 있으니, 내가 속한 어떤 모임에서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술을 마시지 않기 위해 애쓴 적은 없다. 마시지 않으면 자연스레 줄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나는 술을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다니까.
주변에서 술과 싸워 이긴 사람을  보지 못했다. 20, 30대에 왕성한 음주 활동을 한 이들은 대부분 경고를 받는다. 몸의 경고다. 그것은 부모의 경고, 친구의 경고, 배우자의 경고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직접적이고 엄중한 경고였다. 대부분은 이 경고를 받아들였다. 술을 끊을 수는 없고 적당한 음주로 바꾼다. 그 '적당한'이라는 것도 내가 보기엔 고개를 내저을 수준이지만, 그들의 화려했던 폭주생활을 가까이서 목도한 나로서는 그만큼의 변화만도 쓰다듬 해주고 싶을 만치 크고 기특했다. 그리고 몇 안 되지만 이 경고를 무시한 사람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음주는 강제종료 되었다. 위장, 간장, 췌장, 혈압, 당뇨, 가정과 함께. 말해 뭐 하랴.
지금은 코로나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스스로 왕관을 뒤집어쓰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폭정을 휘두르는 코로나 덕분에 공포와 두려움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한 두어 달쯤 고생하면 나아지겠지, 한 일 년은 걸릴 거야,... 이렇게 기다리던 날이 쌓여서 벌써 세 번째 해를 맞았다. 백신 접종이 3차를 넘어 4차까지 이어지고 방역을 완전히 풀어버린 나라도 있다. 하지만 긴장을 낮추는 곳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창궐하고, 감염자를 격리하면서 사회가 부분마다 정지되자 물자가 제대로 돌지 않고 물가가 폭등한다. 올해는 어떻게 해서든 이 코로나 정국을 연착륙시키려고 우리나라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방어선을 좀 더 뒤로 멀찌감치 밀어놓고 싶어 하는 전문가와 오랜 불경기로 낭떠러지에 몰린 자영업자, 오래 지속한 방역정책에 지쳐버렸다는 시민, 이 중간에서 균형점과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정부의 고민이 깊다. 여전히 언제쯤 벗어나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전처럼 돌아가지 못할 수 있다고도 한다. 
뜬금없이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모를 일이다. 소주 맛이 좋게 느껴진 적은 없다. 달큰하고도 떨떠름한 맛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꿀꺽 넘기고 나면 혀에 미끈둥하게 남는 감미료 맛이 싫고, 블랜딩되지 않아 선명하게 느껴지는 이중 삼중의 맛을 계단처럼 딛고 넘어가야 하는 기분도 별로다. 어찌어찌 마시고 나면 모든 장기와 뇌를 지배하는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일일이 설득해서 몰아내야 하는 시간이 가장 힘들다. 그런데 갑자기, 그 달큰하고 떨떠름한 한 잔이 생각났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게. 훌쩍 털어 넣는 싼 맛이 그리웠던 것일까. 구겨진 셔츠 소매 걷어붙이고 넥타이 윗주머니에 찔러넣고 마주 앉아 소주잔 부딪고 고개 한 번 두 번 끄덕이고 나면 다 알아주던 네가 그리웠던 것일까. 진짜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