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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소설, 2015. 2

The Kind Worth Killing by Peter Swanson

 

- 당신은 살인을 즐기는가?

 

당신은 살인을 즐기는가?

 

'아니오.'라는 답을 하기도 귀찮은 당신은 코웃음으로 대신 할 것이다. 자, 그러지 마시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당신은 살인을 즐기는가?

절대 발각되지 않을 완벽한 살인계획이 있다면, 당신은 살인을 할 텐가?

당신에게 아주 몹쓸 짓을 '할'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먼저 그를 죽이겠는가?

 

당신은 왜 이따위 질문을 두 번씩이나 하느냐고 핀잔할 것이다. 두 번씩이나 생각할 가치도, 여전히 진지하게 대답할 마음도 없는 당신은 이번에는 콧방귀 조차도 아낄 것이다. (혹,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하신 분이 계시다면, 오, 그대여 지금은 한가하게 이따위 글이나 읽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병원에 가서 전문가와 상담해보셔야 해요. 꼭 그럴 사정이 있다면 경찰이나 가까운 친구에게라도 터 놓고 이야기를 해 봅시다.)

 

나 역시도 이 질문에 두 번, 세 번,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나는 살인자의 이야기에 이토록 귀를 기울이는 걸까? 살인자의 살인계획이 틀어지거나 흔들릴 때마다 가슴 졸이며 부디, 기어이, 마침내 살인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살인을 하고 모든 증거를 완벽히 영원히 덮었다는 살인자의 선언에, 나는 왜 안도하고 해방감을 느끼는 것일까. 뜻밖의 인물이 나타나서 완벽했던 살인계획에 방해가 되면, 또 한 번의 살인이 불가피하다는 점에 이리도 쉽게 동의하는 것일까. 혹시 나는 살인을 즐기는 것은 아닐까? 정말 완벽한 살인계획이 있다면, 나는 살인을 하는 쪽을 택하는 것은 아닐까?

 

이보슈, 이건 소설일뿐이잖소. 소설과 현실이 구분이 안되오? 

 

아, 물론 이건 소설이다. 허구일뿐이다. 하지만, 허구, 즉, 지어낸 소설의 세계라 하더라도, 내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이 살인행위라면, 이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살인자가 증거를 잘 덮고 형벌로 부터 완전히 해방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뭔가 문제 있어 보이지 않는가? 살인이든 잔혹범죄이든 소설이면 괜찮은 것인가? 살인의 과정과 증거를 없애는 장면에서 대리만족을 취하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혹 살인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가?

 

이 소설은 살인 스릴러물 치고, 사람이 많이 죽지도 않는다. (오, 아니오. 죽는 사람이 적어서 아쉽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과 그 과정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음, 자책도 된다. 내가 그 살인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아, 자백하건데, 내가 먼저 살인을 했다. 빨리 죽여야겠군, 이라고 살인을 교사했다. 그보다는... 이라며 살인을 은폐할 더 치밀한 방법을 제안했다. 살인자의 가슴으로 조마조마했고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책을 다 읽고나니 책이 내게 묻는다. 당신는 살인을 즐기는가? /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