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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한스 라트

Und Gott sprach: Wir müssen reden! written by Hans Rath, 2012. 11.09

소설

 

신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는 길

 

난 무신론자야.

단호하게 말하는 친구의 얼굴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본다. 무신론이란 '신은 없다.', 즉 어떤 의미로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영적 존재가 없다는 '믿음'이다. 한밤에 홀로 공동묘지를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게 되면 그 무신론은 부족한 믿음이다. 시험장에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부디 잘 되기를, 가슴이 아프도록 기원하게 되는 것도 무신론으로는 갈 길이 한참이다. 잔인한 전쟁과 불의한 학살의 현장을 보면서 사람이 아닌 신을 원망하는 것은 어떤가? 무신론자는 믿지 않는 신을 자주 원망한다. 이렇듯 한 사람이 완벽한 무신론자가 되기란 종교인이 오랜 세월 믿음을 갈고 닦아 마침내 신의 얼굴을 마주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경지이다. 그러니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선언하는 친구의 '반석 같은 믿음'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하하, 역시 신은 공평해.

무신론을 믿는 친구는 자주 이런 말을 입에 올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친구에게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무신론을 주장하면서도 세상만사에서 신의 섭리를 발견하고 칭송한다. 그런가 하면 친구는 이런 말도 한다. "아, 신이 있다면, 어찌 이럴 수가 있어." 그는 인간사에서 신이 해줘야 할 역할을 분명하게 떼어서 구분하고 있다. 사람의 한계를 아는 것이고, 신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에 대한 '반석 같은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사람들은 삶에서 신의 영역을 일정부분 그어 놓고 있다. 신의 정체와 역할에 대한 나름의 정의도 가지고 있다. 돈을 벌게 해주고, 시험에 합격시켜주고, 아픈 것을 낫게 하고, (나에게) 나쁜 사람은 벌을 주는 기복적인 믿음은 동서고금 널리 퍼져있다. 불의를 멸하고, 자연 재앙을 막아주고, 전쟁에서 이기게 해 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공통으로 바라는 신의 역할이다. 그것 말고도 "신이 있다면…."이라는 조건절 다음에는 훨씬 다양하고 다채로운 신의 정체와 성격이 정의된다.  ,

 

그런 신의 정의가 입 밖으로 나와 사회 속에 던져질 때, 신에 관한 주재는 언제나 무겁고 첨예하다. 서로 다른 종교 사이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같은 종교 안에서도 신에 관한 다툼은 언제나 날카롭고 치열하고 치명적이었다. 수많은 정치적 분쟁과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 다툼이 어찌나 치명적이던지 신조차 차마 끼어들기 난처할 것 같다.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한스 라트는 신에 관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신에 관해 저마다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을 테니, 그래서 살짝 긴장하고 날이 서 있을 독자에게 먼저 맥주를 한 잔 따라준다. 그리고 '이야기나 좀 하자'고 한다. 창조하고 심판하여 멸망시키는 신이 아닌, 후회스럽고 골치가 아파서 누구라도 붙들고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 하는 신에 관한 이야기다. 질 좋은 포도주를 만나 반색하고 담배도 피우고 놀음도 즐기는 신이다. 때로는 초인적인 기적도 보여주지만, 그것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분노하기는커녕 섭섭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자조를 나타낸다.

 

우리나라 축구 선수 중에는 골을 넣고 나서 잔디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선수가 있다. A매치에서 20개가 넘는 골을 넣었다. 그 스무 번의 기도는 무슨 내용이었을까. 세계 평화나 골을 먹은 상대편 골키퍼를 위로해 달라는 이타적인 내용은 아닐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 골을 넣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그리고 이 모든 환호와 영광을 신에게 드린다는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도 만만치는 않다. 남미에서 온 그들은 잔디밭에 입장할 때부터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애써 한 골을 넣고는 하늘을 향해 키스를 올려보낸다. 이제 신은 누구의 편이 되어 축구를 하실까? 이거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신이 있다면 당장 내 머리에 번개를 내려 보라."고 외친다고 해서, 그런데도 즉시 벼락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신의 부재를 증명했다 할 수는 없다. 신이 시시콜콜 시비나 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이들을 찾아 번개나 쏘는 이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이 존재한다면 당장 내 심장을 까맣게 태워 보라."고 외쳐도 태양이 내 심장을 태울 일은 없다. 태양은 구름 너머에서 밝은 빛을 비추며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신은 신대로 섭섭함도 있고 고민도 있겠지만 그대로 할 일이 있을 것이다.

 

신이 있나 없나 고민에 빠져 그의 존재와 부재의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일은 적지 않게 고달프다. 신은 그런 이들을 팔꿈치로 툭 건드리며 '얘기나 좀 하자'고 한다. 이제는 신에게로 건너와서 신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신의 입장이 되어서 전쟁, 굶주림, 학살, 자연 재앙, 불의와 치열한 경쟁, 그리고 나의 성공과 실패를 바라보면. 그 안에 사람이 있으니, 그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 안에 내가 있으니, 나를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