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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스티그 라르손

Millennium by Stieg Larsson

 

 

눈앞이 흐릿하다. 여기가 어디지? 답답하게 덮고 있는 것들을 떨쳐내려는 듯 머리를 한 번 세차게 흔들었다. 시력이 서서히 돌아온다. 아, 여기는 ... 우리집이잖아? 그리고 나는 거실 식탁에 앉아 있다. 그런데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아이들은? 후다닥 방문을 열어 보니 어둑어둑한 방에 아이들이 쓰러져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기억을 더듬어 본다.  

 

에게해 (Aegean Sea)가 내려다 보이는 지브롤터 해안, 총격에 아수라장이 된 스톡홀름의 카페, 천재 헤커들의 해방구, 보안회사, 정보기관, 칼끝 위에서도 자부심 하나로 버티어 내는 작은 잡지사 밀레니엄의 사무실, 영하 21도 오두막 ... 그래, 며칠 전 밀레니엄 1권의 첫 장을 넘기던 순간이 기억난다. 아,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지금 막 마지막 표지를 덮은 것은, 3권이다. 그 사이 아내는 사라졌고, 아이들은 쓰려져 있다. 

 

아, 아니다. 현관문이 열리고 아내가 들어 왔다. 젖은 머리를 보니 운동을 다녀 온 모양이다. 왜 불도 안 켠 방에 우두커니 서 있느냐고 핀잔 한다. 불을 켜니, 아이들이 초저녁 낮잠에서 깨어난다. 부랴부랴 저녁을 준비해서 식탁에 둘러 앉는다. 내일 학교에 갈 생각을 하니 스트레스라고 아이들이 푸념한다. 그럼 오늘은 일요일이구나... 이제 뭘 하지? 

 

저녁 상을 치우고 시원한 공기가 그리워 산책을 나왔다. 약국을 지나고, 편의점을 지나고 구두방과 포장마차를 지나는 동안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버스와 차들이 지나간다. 비로소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면서 몸이 오싹해진다. 나, 내일 출근해야 한다. 밀린 일이 많다. 아, 여기는 ... 열흘 동안 스톡홀름에 잡혀 있던 내 영혼이 현실로 돌아왔다.

 

리스베트 살란데르, 주인공의 이름인데, 기나긴 독서여정을 마치고 처음으로 이 이름을 불러본다. 사진기억력, 천재적 헤킹 실력자, 사회성 제로 (0), 키 150cm, 그래서 10대 같아 보이는 20대.

 

미켈 블롬크비스트, 잡지 밀레니엄의 발행인이자 기자. 기자로서의 후각이 뛰어나고 일단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고 파고드는 근성도 있다. 기사를 놓고 타협하지 않는 저널리즘 원칙을 지녔으나, 따지고 보면 인정과 사랑 앞에서 무수히 타협하는 의리파이고 왕성한 여성편력 보유자.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은 기자 출신으로 총 10권의 밀레니엄 씨리즈를 기획하지만, 3권만을 마치고 2004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더욱 안타깝게도 책은 그의 사후에 출간 되었다.

 

1권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05)

2권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The Girl Who Played with Fire (2006)

3권 벌집을 발로 찬 소녀; The Girl Who kicked the Hornets' Nest (2007)

 

2013년 출판사인 Norstedts förlag사는 스웨덴 작가이자 범죄 전문 기자인 David Lagercrantz가 라르손의 등장인물들을 이어 받아 밀레니엄 시리즈를 계속 쓰기로 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4권과 5권이 발표되었다.

 

4권 거미줄에 걸린 소녀; The Girl in the Spider's Web (2015)

5권 받은 만큼 복수하는 소녀; The Girl Who Takes an Eye for an Eye (2017)

 

소설은 재미있다. 사소한 것 같기도하고 거악 같기도한 세력에 분연히 맞서 싸우는 나약한 것 같으면서도 슈퍼울트라짱 능력을 보유한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바람둥이 기자 미켈 블롬크비스트의 활약 이야기이다. 스웨덴처럼 인권의식이 높고 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에 이런 어둡고 잔혹한 면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리스베트와 블롬크비스트를 따라 이름도 낯선 스웨덴 여러 지역과 지하철역을 돌고 돌다보면, 스웨덴의 오늘과 내일이 염려스러울만치 깊이 몰입하게 된다. 

 

스릴러 물이다 보니, 어떤 내용을 꺼내 놓아도 스포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을 소개한 리디북스의 [추리 스릴러 길라잡이]에서는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 스포일러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이 책을 소개헀다.  

 

명작 중의 명작인 밀레니엄 시리즈를 소개하려니 좀 긴장이 된다. 어쨌든 가이드란 나름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하는 법이지만 원래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 없다지 않는가. 이 소설을 아직 읽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커다란 즐거움 하나가 남아있는 셈이다. 부럽다. 

 

이런 소개글을 읽고도 밀레니엄을 꺼내 않고는 견딜 수 없으리라. 이제 나도 인생의 커다란 즐거움 하나를 막 까먹은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