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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소설, 1988년

 

The Alchemist 

by Paulo Coelho

 

 

- 사막의 모래언덕을 움직이는 바람이 되라.

 

부모의 권유에 따라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서 라틴어와 스페인어, 신학을 공부하던 청년 산티아고는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싶다는 소망에 따라 양치기가 된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초원을 돌며 양을 치고 책도 읽고 타리파(Tarifa)에서 한 번 만나본 소녀를 일 년 만에 다시 볼 기대를 품고 사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삶을 살던 그가 이상한 꿈을 두 번이나 꾼다. 그리고 갑자기 살렘의 왕이라 자처하는 노인이 나타나서 그 꿈을 좇아가 '자아의 신화'를 이루라고 권한다. 그 꿈은 다름 아닌 이집트 피라미드 주변에서 보물을 캐는 것이다. 양을 팔아 여비를 마련한 산티아고는 배를 타고 탕헤르로 건너가 꿈을 좇는 여행을 시작한다.

 

 

[연금술사-Alchemist] 라는 제목에서는 조금 무겁고 어려운 인상이 든다. 역사적으로 연금술이 가지는 일반적인 의미들, 이를테면 구리나 납 등으로 금과 은을 만들려는 허황한 꿈과 그 꿈을 천 년 동안 좇으면서 금 대신 얻어낸 수 많은 화학기술의 발견과 발전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동화처럼 맑고 순수한 기분이 든다. 몇 번이나 [어린왕자]의 한 대목이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사막에서 사막의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는 저쪽 사막 끝에서 어린왕자가 그림 한 장을 들고 천연덕 스럽게 나타나도 좋을 것 같았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마음이 맑아지고 가벼워지고 따듯해지고 착해졌다.  

 

지혜로운 말씀도 풍년인 세상에서 어떤 이들은 "만족함을 알라"고 한다. 꿈을 좇는 것을 무지개를 좇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루 세 번 '행복하다'고 무작정 말하면 반드시 행복해진다고, 그러니 헛된 꿈 따위는 버리고, 지금 앉은 자리에서 행복을 느껴 보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금술사는 "꿈을 이루라"고 한다. 주변의 누구와 비교하면 만족스러운 일상이지만 그 만족을 버리고 떠나라고 한다. 모든 것을 잃고 바닦에 떨어진 산티아고가 바닦에서 겨우 다시 일어나 제법 성공한 삶을 이뤄내고 사랑도 얻게 되지만, 신화를 따라 여행을 계속하라고 한다. 사막의 모래언덕을 움직이는 바람이 되라고 한다.  

 

꿈을 가진 모든 이들이 그 꿈을 좇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꿈이 이루어진 다음에 마주할 공허함이 두려워 꿈을 간직하기만 하고 좇지 않는다. 꿈을 너무 낮은 곳, 너무 가까운 곳에 둔 것이다. 그래서 꿈의 크기와 거리도 중요하다. 가까이에 있어서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꿈을 두는 것은 자신을 새장에 가둬 놓는 꼴이다. 지금의 꿈이 너무 가까이에 있다면, 얼른 그 꿈을 지나쳐 공허함을 마주하며 다음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마다 삶, 꿈, 정신과 우주에 대한 저 마다의 깊은 성찰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특별하다. 이를테면 이제는 사람이 뜸해진 구 시가지에서 혼자 그릇가게를 꾸려가는 사장이나 사막을 건너는 행상의 낙타몰이꾼과 이야기할 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산티아고는 그들과 대화하면서 때로는 반대되는 입장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이 자신의 처지에서 살아낸 삶과 정신과 꿈과 희망과 단념, 기다림의 이야기는 나름의 깊은 성찰과 확고한 철학을 담고 있다.

 

사실 우리네 삶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모두 잠든 새벽마다 마을을 돌며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 아저씨, 아침 출근길에 허리를 깊숙이 숙인 채 거수경례를 하는 경비 아저씨, 내가 30분 타기도 지겨워 하는 버스를 종일 몰아야 하는 운전사 아저씨, 거래처 부장님, 점심 때 얼른 요기를 하느라 후다닥 다녀온 국밥집 아줌마, 포장마차 젊은 주인, 밤 마다 편의점을 지키는 아르바이트 학생, 그들이라고 삶과 정신과 꿈에 대한 철학이 없겠는가. 다만 묻지 않고 듣지 않을 뿐이다.

 

주인공인 산티아고는 죽으나 사나 물과 풀 밖에 모르는 양 떼를 통해서도 무언가를 배우는 낮은 자세와 열린 마음을 가졌다. 모래와 가끔 지나가는 바람과 침묵 밖에 없는 사막에게도 귀를 기울인다. 지혜롭고 말 많은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런 낮은 자세와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지혜의 음성을 듣는 모양이다. 

 

이 책은 머지 않아 다시 내 손에 들려질 것이다. 어느 책이나 읽기를 다 하고 나면 꼭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앞에서 밀려오는 책이 워낙 많다 보니, 읽고 난 책을 다시 집어 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연금술사'는 다 읽었다고 말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 지도를 펼치게 하는 책이 있다. 

주인공이 먼 길을 여행하는 이야기,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는 이야기가 있는 책이다. 처음엔 지명으로 대충 위치를 상상해 보지만, 이야기가 깊어지면서 자꾸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바다를 건넜다는데, 얼마나 가깝고 먼지, 해안이 어떻게 구부러져 있는지, 무엇이 얼마나 건너 다니는 바닷길인지 ... 지도를 펼쳐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다. 문학이고 뭐고, 이런 일이야 말로 포기할 수 없는 재미이다. 

 

산티아고가 스페인 타리파(Taripa) 에서 모로코 탕헤르(Tangier)로 건너간 바다는 뱃길로 불과 두 시간 남짓이라고 한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대륙의 끝이 가까이 닿으면서 지중해와 대서양을 구분 짓고 있다. 아프리카와 유럽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종교, 사람과 동물과 상품이 이 바닷길을 통해 오고 간다. 서로를 침략하는 가장 손 쉬운 경로이기도 했으니, 타리파와 탕헤르의 사람들에게 이 바닷길은 삶과 죽음의 길이고 소통과 단절의 길이기도 했다. 아, 가 보고 싶어라...

 

지중해를 건너는 산티아고의 최종 목적지는 이집트 피라미드. 모로코 탕헤르로 부터 직선 거리 3,500km, 더구나 사하라 사막을 건너야 한다. 이런 줄도 모르고 피라미드에 가겠다며 덜컥 바다를 건너는 온 산티아고는 순진한 것인가, 천연덕스러운 것인가. 상대적으로 안달루시아의 환경과 삶이 얼마나 풍요로웠던 가를 짐작케 한다.

 

구글맵으로는 걸어서 869시간 걸린다고 한다.

하루 8시간 걸으면, 109일 걸리는 셈이다.

길도 잘 나 있겠다, 걸을 만 할 것 같은데 ... ???

 

옛날에는 사막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건넜던 모양이다.

illustrated by Rodica Pra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