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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부름 - 잭 런던

The Call of the Wild by Jack London

소설, 1903

 

 

- 문명에서 야성으로

벅은 세인트버나드 종인 아빠의 큰 체구와 세퍼트 종인 엄마의 단단하고 날렵한 골격을 물려 받아 보기 드물게 크고 강인했다. 지금은 실리콘벨리로 잘 알려진 산타클라라 벨리에서 판사인 주인의 충직한 친구로, 또 커다란 정원의 지배자로 자부심과 위엄을 지니고 자랐다. 

 

1897년 캐나다 유콘의 클론다이크 골드러시로 많은 사람들이 극지방으로 몰려들었다. 또한 많은 개들이 썰매를 끌기 위해 따듯하고 유복한 남쪽지방을 떠나 북으로 끌려 가야 했다. 귀족 같은 삶을 살던 벅도 정원사의 배신으로 북극지방으로 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벅은 생애 처음으로 모진 학대를 당하고 굴종을 배운다.

 

추위와 배고픔과 야생의 위협을 견디며 귀족의 품격은 처참하게 부서지고 생존이라는 지극히 기본적 욕구 위에 비굴함과 배신과 교활함을 익혀간다. 그리고 그의 피 속에 심장에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 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야성의 본능이 서서히 깨어난다. 따듯하고 여유로운 남쪽지방에서 자부심과 품위를 지키며 살던 벅이 최악의 오지라 할 수 있는 알라스카 극지에서 야성을 깨워 가는 과정은 신비롭기도 하고 가슴이 뛸 정도로 흥분되는 일이기도 하다. 

 

골드러시는 금빛 희망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추운 극지방으로 몰려들 만큼 밝고 빛나는 소문이다. 하지만 그 빛을 실제로 손에 움켜쥐는 사람의 숫자는 매우 적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는지 확실치 않을 정도다. 대다수는 목숨과 인생을 건 투자에서 실패를 겪는다. 금빛 희망이 꺼지고 이제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남겨진 숙제는 단 하나, 생존 뿐이다. 사람도 개도 비굴해지고 교활해지고 잔인해진다. 이 과정을 겪는 짐승에게는 본능이 깨어난다고 한다. 그러면 사람에게도 그것이 본능이었던가?

 

벅과 더불어 사람 보다도 많은 개의 이름이 등장하고 이들의 여정과 자부심, 위기, 절망, 회복, 배움과 처절한 싸움에 대한 이야기인데 정작 개들은 단 한 마디 대사가 없다. (아, 있다. 낑낑, 으르렁?) 그럼에도 벅에게 오는 무수한 감정과 변화를 사실적으로 느끼게 하는 이야기의 기술에 여러 번 감탄한다.  

 

작가는 1896년 버클리대학에 입학했으나 이듬해에 돈을 벌기 위해 골드러시를 따라 클론다이크에 들어갔다가 1년 만에 빈 손으로 돌아온다. 골드러시의 뜨거운 열병을 앓으며 벅이 지나간 길을 몸소 여행하고 극지방 원시림의 혹독한 추위와 공포를 경험하고 또 모든 것이 실패로 결론 났을 때의 나락과 밑바닦 본성도 보고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사람과 짐승과 현장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100년 전에 쓰여진 이야기임에도 시간적 변화가 크게 느껴지지 않고 오늘의 이야기처럼 와 닿는 것은 아마도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극지방의 원시림과 그 안에서 수백 년을 살아 왔고 여전히 살아 있을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피와 우리의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속에도 그 때 그 원시림에서 생존과 지배를 다투던 야성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주 어렸을 적, 이 소설을 처음 읽고난 후 부터 종종 알래스카 원시림에서 밤을 맞는 꿈을 꾼다. 꿈이라기 보다는 눈을 감을 때 마다 떠오르는 진한 상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문명의 빛이 닿지 않는 칠흙 같은 밤이지만 무섭진 않다. 이 꿈에서 나는 숲의 지배자, 늑대니까.

네 발 짐승 한 마리가 눈밭을 달린다. 달빛 없는 한 밤에도 눈밭은 새 하얀 빛을 낸다. 그의 두 눈은 오직 앞을 향하고, 그래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의 본능은 폐를 찌르며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담긴 냄새를 일일이 확인하고, 바람에 실려 귀에 부딪는 소리를 세밀하게 나눠 듣는다.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물결을 이루며 사방을 향해 뻗친 털은 숲과 물과 땅과 하늘의 미세한 움직임을 읽는다. 
길이 없는 숲을 바람이 지나듯 뚫고 지나 물을 건너고 바위를 뛰어넘어 마침내 언덕 위에 오른다. 비탈을 타고 오른 바람이 갈기를 헤집는다. 밤은 깊고 숲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다. 그는 본다, 저 어둠 속에 가득 차 있는 생명을. 두려움과 분노와 적개심 어린 시선을 마주한다. 더욱더 곧고 단단하게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의 별 만큼 많은 눈동자를 받아낸다. 숲의 지배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지배자가 뜨거운 숨을 뱉으며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한다. 숲은 두려움에 떨고, 분노에 떨고, 또 깊은 고독과 슬픔에 흔들린다.//e